아침에 일어나서는 바게트를 사왔다. 반으로 자르고 또 다시 반으로 갈라 잠깐동안 토스토기에 굽는다. 올리브오일, 치즈, 통후추를 갈고, 햄과 토마토를 올려 뚜껑을 덮는다. 그리고 나서는 드리퍼와 서버를 꺼내 필터지를 적시고 갈아둔 원두를 붓는다. 뜨거운 물을 차례로 붓고 유리잔에 몇 알 남지 않은 얼음을 담아 희석한다.
방해받지 않는 아침을 보내고 싶었다. 파란 체크무늬의 면조각을 꺼내 펼쳤다. 읽다 잠들었던 책을 가져왔고 나는 오늘도 식탁으로 가지 않고 이 주방 앞으로 의자를 끌고 온다. 지금은 배수아의 <작별들 순간들>을 읽고 있다. 근 두 달간은 소설만 읽다 간만에 읽는 산문이다. 아마 지금 내겐 어떤 머뭇거림 같은 것들이 필요했겠지. 십 여년간 북독일의 한 오두막에서 쓰여진 글. 은둔하던 글. 낙엽을 헤치며 걷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산문 한 편을 읽었다. 늦가을 11월의 정원에 대해서.
솔직하게 말하면 과부하가 온 것 같다. 초가을, 어떤 작별을 맞고 나는 닥치는 대로 일을 벌렸다. 나는 기필코 도망쳐야만 했다. 내 마음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고 싶지 않아서, 나도 그냥 괜찮은 척 하고 싶어서 대책없이 핑계만 늘렸다. 그럼에도 핑계는 제 모양을 진작 알았는지 자꾸만 껍질을 벗으려 했다. 그는 분노하기도, 울부짖기도 했다.
날짜를 보니 오늘에서야 딱 한 달이 되었다. 나는 잘 도망쳐왔을까. 그새 이만치 멀리 서있는 너와 나의 거리를 차분히 셈해본다. 너는 아마 내게 어떤 숙제를 남겨준 것 같다. 나는 가을의 중턱을 넘고 있다.